쿠스쿠스의 모든 것: 북아프리카 전통 음식의 유래와 현대적 진화

오동통통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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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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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쿠스의 모든 것: 북아프리카 전통 음식의 유래와 현대적 진화

서론

우리는 흔히 쿠스쿠스를 ‘쌀 같은 곡물’로 착각하곤 하지만, 실상 그것은 단순한 곡물을 넘어선 역사와 문명의 축적체,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은유입니다. 북아프리카의 뜨거운 햇볕 아래, 모래바람을 견디며 자란 밀에서 시작된 이 음식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쳐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쿠스쿠스는 단지 한 끼 식사가 아니라, 한 민족의 기억이고, 여성들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전통이며, 바다를 건넌 이민자들의 위로였습니다. 수없이 비벼낸 세몰리나 입자 하나하나에 베르베르족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이슬람 문화권의 손님맞이 철학, 그리고 현대 사회의 융합적 음식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특히 이슬람 세계에서 금요일마다 가족이 모여 함께 나누는 쿠스쿠스 한 접시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삶을 나누는 공동체의 실천이자 감사와 존중의 의식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유럽으로 이주한 마그레브 지역의 이민자들에게 쿠스쿠스는 고향의 향기이자, 뿌리를 기억하는 상징적 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런 정체성은 전 세계로 확산되며 더 큰 가치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단지 북아프리카에서만이 아니라, 프랑스의 미슐랭 레스토랑, 미국의 헬시 마켓, 한국의 글로벌 푸드 페스티벌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이 음식은, 문화 간의 대화이자 인류의 식탁 위의 화해의 증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쿠스쿠스의 유래, 문화적 의미, 조리 방식, 지역적 차이, 현대적 역할까지 하나하나 깊이 있게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쿠스쿠스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 과정

쿠스쿠스(Couscous)는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음식입니다. 그 유래는 기원전 수 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특히 마그레브(Maghreb, 북아프리카 서부의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리비아 등) 지역에서 고대 베르베르인들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 자료에 따르면, 알제리의 텔라(Tell) 지역에서 기원전 3세기경 사용된 **쿠스쿠스 전용 증기기구(커세커스, couscoussier)**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쿠스쿠스가 단순한 곡물 요리 그 이상으로, 기술적 조리 기법을 수반하는 정교한 요리 문화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입니다. 실제로 베르베르인들은 좁은 경작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밀의 부산물인 세몰리나를 작고 일정한 입자로 빚은 후, 손과 체를 이용해 비비고 말리고 증기 쪄서 쿠스쿠스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과학적인 보존식이자 다기능 식품이었습니다.

쿠스쿠스는 이후 이슬람의 북아프리카 확장, 중세 무역로의 형성, 안달루시아와 오스만 문화의 확산 등을 통해 지중해 전역은 물론 유럽 남부와 사하라 이남 지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안달루시아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쿠스쿠스를 전파하면서 스페인 남부와 시칠리아, 프랑스 남부 등지에서도 쿠스쿠스가 현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 시기에는 쿠스쿠스가 역으로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의 식문화에 유입되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와 튀니지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가져온 쿠스쿠스는 이제 프랑스 국민음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프랑스의 유명 음식문화잡지에서 “파스타보다 프랑스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할 정도입니다.

즉, 쿠스쿠스는 단순한 지역 음식이 아니라 무역, 종교, 제국주의, 이민의 역사를 거치며 생존하고 진화해온 음식 문화의 산 증인입니다.

쿠스쿠스의 문화적 상징성과 지역별 변형

쿠스쿠스는 북아프리카에서는 단순한 식사가 아닌 가족, 공동체, 환대, 축복을 상징하는 음식입니다. 마그레브 지역에서는 결혼식, 금요일 예배 후의 식사, 무슬림 명절인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나 이드 알아드하(Eid al-Adha), 혹은 장례식 후의 조용한 위로의 식탁에도 언제나 쿠스쿠스가 중심이 됩니다.

모로코에서는 쿠스쿠스를 금요일 점심의 필수 음식으로 여깁니다. 이슬람의 안식일에 해당하는 금요일에 가족과 이웃이 모여 쿠스쿠스와 육류, 채소, 향신료가 어우러진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종교적 행위이자 공동체적 의무이기도 합니다. 특히 금요일 쿠스쿠스는 "세상의 모든 음식을 하나의 접시에 올려놓았다"는 비유가 있을 정도로 푸짐하고 화려하게 차려지며, 삶과 감사, 신에 대한 존경을 표현합니다.

튀니지에서는 쿠스쿠스를 더욱 강렬한 향신료와 토마토 베이스로 조리하여 붉고 매콤한 튀니지식 쿠스쿠스로 즐기며, 생선이나 오징어, 양고기와 곁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튀니지 해안 지역에서는 바다의 재료와 쿠스쿠스가 만나면서 지중해풍 해산물 쿠스쿠스로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알제리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쿠스쿠스 버전을 갖고 있습니다. 산악 지대에서는 렌즈콩이나 병아리콩을 중심으로 한 단백질 중심의 채식 쿠스쿠스, 사하라 지역에서는 건조고기나 말린 야채를 이용한 보존식 형태의 쿠스쿠스, 그리고 결혼식에서는 **양고기와 계피, 건포도, 캐러멜 양파를 얹은 ‘단짠 쿠스쿠스’**가 제공됩니다.

심지어 리비아, 말리, 차드, 니제르, 모리타니, 수단 등의 사헬 및 사하라 국가들에서도 지역별 곡물(조, 기장 등)을 쿠스쿠스로 응용하여 조리하며, 이는 쿠스쿠스의 형식이 특정 재료나 국경에 묶이지 않고 문화의 원형으로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쿠스쿠스의 전통적인 조리법과 주요 재료

쿠스쿠스의 조리 과정은 매우 섬세하며, 전통적인 방법으로 준비할 경우 ‘예술적인 노동’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정성과 기술을 요구합니다.

기본 재료는 세몰리나(경질밀 가루)입니다. 이를 손에 적당량 쥐고, 소금과 미지근한 물을 약간씩 뿌리며 두 손으로 천천히 굴리는 과정을 반복해 고운 입자의 쌀알처럼 만든 반죽 조각을 형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수분이 들어가면 덩어리가 생기고, 너무 적으면 가루로 부서지기 때문에 손끝의 감각과 숙련된 기술이 요구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쿠스쿠스는 체에 쳐서 입자 크기를 고르게 하고, 그 후에는 전통적인 쿠스쿠스 증기솥인 **쿠스쿠시어(Couscoussier)**에 넣고 여러 차례 증기로 찌게 됩니다. 첫 번째 쪄낸 후에는 다시 꺼내어 손으로 비비고, 올리브오일을 바르고, 소금물로 적셔 다시 쪄냅니다. 이 과정을 보통 2~3회 반복하여 쌀보다 훨씬 부드럽고 공기처럼 가벼운 식감의 쿠스쿠스를 완성합니다.

이 위에 올라가는 토핑은 지역과 행사에 따라 다릅니다. 보통은 양고기, 닭고기, 혹은 해산물과 함께 다양한 채소—당근, 호박, 병아리콩, 무, 가지, 양파, 토마토 등을 곁들이며, 향신료로는 쿠민, 강황, 계피, 샤프란, 고추, 생강 등이 사용됩니다. 가끔은 건포도, 아몬드, 구운 병아리콩, 캐러멜 양파 등을 얹어 단맛과 짠맛의 조화를 추구하기도 합니다.

쿠스쿠스의 본질은 ‘한 솥에 삶아, 한 접시에 나누는’ 공동체 정신에 있습니다. 전통적인 식사에서는 거대한 원형 접시에 쿠스쿠스를 수북하게 담고, 가족 모두가 손으로 떠먹거나 숟가락 하나로 나누어 먹습니다. 이는 음식을 매개로 신체적 거리와 심리적 벽을 허물며 공동체 유대를 강화하는 실천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쿠스쿠스의 역할과 글로벌 확산

쿠스쿠스는 이제 북아프리카만의 음식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건강식, 채식, 퓨전 요리 붐을 타고 ‘지구촌 식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중화되었고, 고급 레스토랑부터 가정용 인스턴트 제품에 이르기까지 **쿠스쿠스는 일상적인 ‘편안한 글로벌 푸드’**가 되었습니다.

건강 측면에서도 쿠스쿠스는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통 밀 쿠스쿠스 외에도 퀴노아 쿠스쿠스, 콜리플라워 쿠스쿠스, 완두콩 쿠스쿠스 등 다양한 대체 곡물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저탄수화물·고식이섬유·비건 프렌들리한 요소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쿠스쿠스는 또한 이민과 디아스포라의 기억, 정체성의 정착 방식으로서도 중요한 상징이 됩니다. 알제리 출신 이민자가 파리에서 쿠스쿠스를 만들며 조국을 기억하고, 프랑스 태생의 2세가 부모와 조부모의 뿌리를 이해하게 되는 매개체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음식은 장소를 떠났지만, 의미는 계승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2020년, 쿠스쿠스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습니다. 이는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모리타니 4개국이 공동으로 신청하여, 국가적 경쟁을 넘어 공동 유산으로서의 쿠스쿠스를 인정받은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결정은 쿠스쿠스가 정치와 종교, 국경을 초월해 인류의 공유 자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을 상징합니다.

즉, 쿠스쿠스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문화, 역사, 공동체, 기억, 화해, 그리고 생존의 상징입니다. 한 톨 한 톨의 세몰리나 입자에, 이민자의 삶과 어머니의 손맛, 베르베르 민족의 고원과 사하라의 모래바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쿠스쿠스를 통해 음식이 단순한 요리법 이상의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 환경, 생활의 기술, 그리고 사람 간의 관계를 포괄하는 총체적 문화현상입니다. 쿠스쿠스는 베르베르 여성의 손끝에서 출발해 오스만과 무어인의 발자취를 따라 유럽으로 퍼졌고, 다시 세계 각지의 식탁에서 다양성과 통합의 상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가루 입자를 정성껏 굴려 작은 구슬 모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찜기에서 몇 차례나 부드럽게 찌고 비비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은, 단지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존중, 손님에 대한 배려, 가정에 대한 사랑,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자, 더 나아가 문화의 전승이기도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쿠스쿠스는 고향의 기억을 간직한 이민자들에게는 정체성의 상징, 건강한 식사를 추구하는 현대인에게는 영양가 높은 슈퍼푸드, 요리를 통한 교류를 추구하는 셰프들에게는 문화 간 융합의 캔버스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쿠스쿠스는 국경과 민족, 종교를 초월한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이제 우리 또한 쿠스쿠스를 단지 이국적인 요리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수천 년의 숨결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느끼며, 한 숟가락에 담긴 세계사와 인류애를 음미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저녁, 여러분의 식탁 위에도 쿠스쿠스 한 접시를 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단순히 입으로 느끼는 맛 이상의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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