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줄거리와 결말 해석 – 이름 뒤에 숨은 혼돈의 철학

오동통통너구리

·

2025. 6. 3. 02:30

반응형
728x170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줄거리와 결말 해석 – 이름 뒤에 숨은 혼돈의 철학

서론

우리는 흔히 ‘이름을 붙이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모든 생명체, 사물, 감정, 현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을 질서 속에 정렬함으로써 세상을 통제 가능한 구조물로 착각합니다. 이름이 붙여진 존재는 마치 그것으로 완전히 정의된 듯 여겨지고, 혼돈은 그렇게 천천히 사라져가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우리의 믿음을 뿌리째 흔드는 충격적인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이 책은 단순한 과학책도, 누군가의 전기 문학도 아닙니다. 그것은 ‘질서’라는 인간의 믿음과 ‘혼돈’이라는 우주의 본질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한 사람의 사유이자, 우리 모두의 내면을 향한 질문입니다.

저자 룰루 밀러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스탠퍼드 초대 총장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추적하며, 그가 평생을 바쳐 집착했던 ‘질서화’의 욕망이 어떻게 개인을 구원하기도 하고, 어떻게 인류에게 재앙을 안기기도 했는지를 철저하게 파헤칩니다. 조던은 수만 종의 물고기를 분류하고 이름 붙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과학적 분류 체계를 신봉했습니다. 하지만 조던이 몰랐던 것은 — 혹은 외면했던 것은 — 세상은 그가 믿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모든 연구 표본이 산산조각 났을 때, 그는 더 강하게 질서를 복원하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우생학’이라는, 인간을 숫자와 계급으로 나누는 위험한 사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책은 단지 과거의 과학사를 재조명하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저자 자신 또한 삶에서 겪은 상실, 정체성의 혼란, 좌절, 그리고 애써 붙잡으려 했던 ‘확실성’의 허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그녀가 조던의 삶을 따라가며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질서란 무엇인가? 이름은 정말 존재를 설명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란 과연 불변하는 것인가?

줄거리 개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자의 전기 형식을 빌려 쓰인 ‘정체성 탐구의 철학적 에세이’이자, 질서와 혼돈을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집착을 추적한 지성적 모험입니다. 책의 중심 인물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교육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입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자, 평생을 물고기 분류에 바친 학자로 유명합니다. 한 평생 물고기의 체계와 이름을 정리하고 목록화하는 데 집착했던 그는 2만 종이 넘는 어류를 발견하거나 재정의했으며, 그 이름을 질서정연하게 붙여나가는 데서 안정과 가치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조던의 생애는 단순한 과학자의 성공기와는 거리가 멉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흔들어놓은 사건이었죠. 지진으로 인해 그의 실험실이 파괴되고, 오랜 세월 정리한 수많은 물고기 표본과 분류표, 라벨, 연구 기록이 쓸모 없는 잔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너진 질서를 복원하고자 그 잔해 속에서 다시 라벨을 붙이고, 무너진 표본을 꿰매고, 재정비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끈질김은 과학자로서의 집념처럼 보이지만, 룰루 밀러는 이것이 질서를 믿고 혼돈을 배제하려는 인간 본능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조던의 삶에 머물지 않습니다. 저자 룰루 밀러는 조던의 삶을 따라가며, 자신의 개인적 고통과 정체성의 혼란—특히 성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의문, 인생의 방향을 잃었던 순간들—을 병렬적으로 서술합니다. 그녀는 조던의 생애를 되짚는 동시에, 자신의 상처를 다시 해체하고 직면하며, 과연 우리가 믿는 '질서'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혹은 우리가 안심하기 위해 발명한 허상은 아닌지를 묻습니다.

결말 해석

책의 결말부는 조던의 생애에 대한 재평가이자, 저자의 철학적 사유가 가장 깊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처음엔 존경의 대상으로 시작했던 조던은 점차 그 ‘질서에 대한 신념’이 순수한 과학적 열정이 아닌 통제욕, 그리고 우생학적 사유로의 연결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특히 조던이 생물의 우열을 구분하고, 유전적 우수성에 따라 인간을 분류하려는 우생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은 저자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이는 조던이 과학의 이름으로 사회적 계급과 인종, 장애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려 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밀러는 중요한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질서에 대한 맹신이야말로 위험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서를 좇을 때, 우리는 정리되지 않은 존재를 배제하려고 들고, ‘예외적인 것들’을 제거하려 합니다. 그것은 과학이든, 종교든, 사회 체계든 마찬가지입니다. 조던은 질서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편협한 틀에 맞춰 세상을 왜곡했고, 심지어 인간의 존엄성까지 재단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 밀러는 혼돈 자체를 포용하려고 합니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고, 세상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며, 사람은 뜻하지 않게 방향을 잃고 실패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질서가 해답이 아니며, 무너짐 그 자체가 삶의 본질”이라는 통찰에 이릅니다. 그리고 ‘물고기’라는 존재가 진화론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는 학문적 주장—즉, ‘물고기’라는 분류 자체가 허상이라는 과학계의 의견을 차용하면서, 책의 제목을 **‘우리가 믿는 모든 이름과 구조가 결국 허상일 수 있다’**는 메시지로 확장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질서를 해체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인간은 어떤 구조나 카테고리에 의해 완전히 정의될 수 없으며, 이름 붙여지지 않은 존재들도 동등한 생명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런 존재들—부서지고 실패하고 길을 잃은 존재들—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귀 기울여야 할 대상이라는 밀러의 결론은, 독자에게 긴 여운과 묵직한 울림을 남깁니다.

결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결말은 하나의 명제를 우리 가슴 깊이 새기게 합니다. “질서는 환상이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 사람은 상처 입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바쳐 쌓은 생물 분류 체계는 결국 허물어졌고, 그의 삶의 결말은 우생학이라는 위험한 신념으로 퇴색했습니다. 반면, 룰루 밀러는 그 흔들리는 사유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혼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에 도달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완벽한 구조 속에서 자신을 정리하지 않으며, 질서 밖에 있는 것들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그것은 곧,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들의 존엄을 인정하는 태도이자, 삶이 항상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단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구획하고, 범주화하고, 서열화하면서 얻게 되는 일종의 ‘안심’을 해체하는 언어입니다. 이 책은 그 해체의 여정을 따라가며, 독자에게 한 줄기 새로운 삶의 통찰을 던져줍니다. 혼돈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삶은 그렇게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들로 가득할 때, 비로소 진실해질 수 있습니다.

룰루 밀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말합니다. 완벽하게 정리된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란 언제나 정의를 넘어서 흐르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흐름 속에 놓인 당신 역시, 비로소 자유롭고 아름답다고.

반응형
그리드형

이 포스팅은 쿠팡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 저자에게 암호화폐로 후원하기 💖

아이콘을 클릭하면 지갑 주소가자동으로 복사됩니다